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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땅의 기운을 품다, 시린 바람을 견디는 월동 무, 돌담이 지켜온 토종 당근과 뿌리채소, 강원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겨울 뿌리채소들

재빠른 달팽이 2025. 2. 1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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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질수록 땅속의 생명은 더욱 단단해진다. 한겨울 차가운 땅속에서 자라난 뿌리채소들은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오히려 더욱 깊은 맛을 품는다. 한국의 밥상 위에서 빠질 수 없는 겨울 무와 당근, 토종 단지무와 의성배추, 그리고 제주에서만 자라는 흰고구마까지 이 뿌리 깊은 먹거리들은 단순한 채소가 아니다. 오랜 세월 농부들의 손끝에서 길러지고, 자연과 함께 버텨온 생명의 결정체다.

 

 

 

제주 성산읍 신풍리 – 시린 바람을 견디는 월동 무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제주의 겨울은 바람과 돌이 지배하는 혹독한 계절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월동 무는 그 혹독함을 오히려 단맛으로 바꾼다. 전국 월동 무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제주, 그중에서도 성산읍 신풍리는 한겨울에도 푸릇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신풍리에서는 오래전부터 밭담과 초가집, 연자매(말방아)와 당숲이 어우러져 전통적인 제주 농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밭담 너머로 펼쳐진 무밭에서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곳에서 자란 무는 제주어로 ‘놈삐’라 불리며, 예부터 텃밭인 ‘우영’에서 키워 겨우내 가족들의 식량이 되어주었다. 무의 영양이 산삼 못지않다 하여 ‘동삼(冬蔘)’이라 불리기도 했던 무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겨울을 버티게 해 준 생명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제주성산읍-월동무-한국인의밥상

과거, 약이 귀하던 시절 제주 사람들은 기침이 멎지 않는 자식에게 무를 조려 만든 무조청을 한 숟가락씩 떠먹였다. 잔칫날이면 돼지 앞다리 사이의 접짝뼈와 무청, 무를 넣어 푹 고아낸 ‘접짝뼈국’을 먹으며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밀을 얇게 부쳐 무채를 돌돌 말아 만든 빙떡은 제주 사람들에게 추억의 음식이다. 여기에 바삭하게 구운 옥돔 한 마리가 곁들여지면, 제주 겨울 밥상은 완성된다. 신풍리의 겨울 무와 함께한 섬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로 단단한 뿌리처럼 깊고도 질기다.

 

제주 구좌읍 – 돌담이 지켜온 토종 당근과 뿌리채소

제주구좌읍-토종당근-한국인의밥상
제주구좌읍-토종당근-한국인의밥상

제주의 또 다른 보물, 구좌읍의 당근. 우리나라 당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1월이 되면 당근 수확이 한창이다. 이곳에서 4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슬기(46), 김우람(45) 남매는 제주로 귀농해 뿌리채소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바람 많고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밭을 가꾸는 일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돌들이 쌓이고 쌓여 밭담이 되고, 농작물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벌레 한 입, 새 한 입, 나 한 입, '제주 토종 당근' 만날 수 있는 곳!!!

제주 토종 당근

 

 

제주구좌읍-토종당근-한국인의밥상
제주구좌읍-토종당근-한국인의밥상

남매는 해녀들이 사용하는 ‘비창’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당근을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수확한다. 또한, 제주에서만 자라는 토종 흰고구마와 단지무를 함께 농사지으며 제주의 전통 농법을 배우고 있다. 남매의 스승이자 50년 동안 당근 농사를 지어온 이인순(80) 어르신은 정작 당근을 요리해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남매는 직접 재배한 당근으로 깍둑썬 무 대신 당근을 넣은 ‘당근깍두기’를 만들고, 채 썬 당근을 달달 볶아 밥 위에 올려 지은 ‘당근밥’을 선보였다. 배고팠던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흰고구마메밀범벅과 무콩국까지 제주의 뿌리를 지켜가는 이들의 따뜻한 밥상에 함께해 본다.

당근깍두기-한국인의밥상당근밥-한국인의밥상
토종 당근으로 만든 당근깍두기와 당근밥 - 한국인의밥상

 

강원도 홍천 내촌면 – 토종 작물을 키우는 귀농 부부

홍천-시래기-한국인의밥상
홍천 내촌면 시래기 - 한국인의밥상

한겨울 장터에 가면 찐빵에서 뻥튀기까지,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강원도 홍천 내촌면 오일장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손현숙(66), 심충택(68) 부부가 장을 보러 나왔다. 6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연고도 없는 홍천으로 귀농한 이들. 농사를 배우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토종 작물이었다.

시래기-한국인의밥상
건조한 시래기 - 한국인의밥상

이들은 의성배추, 갓무, 삼동파, 흑찰옥수수 등 다양한 토종 작물을 심으며 씨앗을 직접 거두고 다시 심는 전통 농법을 이어가고 있다. 의성배추는 뿌리가 무처럼 크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 배춧잎과 함께 배추뿌리까지 쪄서 콩가루를 묻혀 먹던 ‘배추뿌리콩가루찜’은 귀한 별미였다. 또한, 무청보다 부드러운 배추시래기로 만든 ‘배추뿌리코다리찜’과 콩물을 넣고 푹 끓인 ‘시래기콩탕’은 한겨울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영양식이다.

겨울뿌리채소밥-한국인의밥상시래기콩탕-한국인의밥상
겨울뿌리채소를 이용한 한국인의밥상

겨울이 깊어갈수록 땅속의 뿌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제주와 강원의 혹독한 자연을 견디며 땅의 기운을 온전히 머금은 겨울 뿌리채소들. 그것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의 흔적이자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의 산물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 또 다른 겨울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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