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공간이 주는 따뜻한 위로는, 때로는 어떤 말보다 더 깊이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한 조용한 택지지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오늘 우리가 찾을 집 역시 겉보기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붉은 벽돌로 단정하게 지어진 단독주택들 사이, 유독 수수한 외관을 지닌 한 집 앞에서 “여기예요~” 하고 손을 흔드는 부부의 환한 미소가 사람을 먼저 맞이합니다.

남편 최명일 씨와 아내 황효숙 씨가 함께 지은 이 집은 단순히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유년 시절의 상처를 품고 따뜻하게 치유한 ‘삶의 안식처’입니다.
최명일 씨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자란 집은 지푸라기로 지붕을 덮고 흙으로 벽을 쌓은 초가집.

그 시절 친구 집을 놀러 가면 볼 수 있었던 빨간 벽돌집은 어린 명일 씨에게는 단순한 주택 그 이상이었습니다.
반듯하게 쌓인 벽돌 사이로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뜻함, 그리고 마당을 품은 여유로운 분위기.
어쩌면 그는 그 벽돌 하나하나에 ‘보통의 일상’을 꿈꿨는지도 모릅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두루 잘 지냈지만, 유독 자신의 집만큼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을 초대하지 못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예정된 날이면 수업을 빠지고 도망친 적도 있을 만큼, 그에게 ‘집’은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꿈을 품었습니다.
스스로 다짐한 ‘나만의 빨간 벽돌집’이라는 목표를 가슴속에 품고, 공부에 매진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거쳐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종시의 한 땅에 직접 설계한 집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집은 그의 오랜 꿈이자 삶의 성찰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외관은 어릴 적 로망 그대로, 따뜻하고 단단한 느낌의 빨간 벽돌로 마감했습니다.
현관은 카페처럼 감각적인 노출 콘크리트로 꾸몄고, 집의 중심엔 ‘하늘을 품은 중정’을 두었습니다.
사계절이 고스란히 담기는 이 중정에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어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집 안을 물들입니다.

이처럼 내부 공간의 일부를 과감히 포기하고 중정을 배치한 이유는 단 하나, ‘하늘을 품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집의 이름 또한 그래서 ‘하품가(하늘을 품은 집)’입니다.
명일 씨의 또 다른 소망은 어린 시절 이루지 못했던 '친구 초대하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딸들이 언제든 친구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아이들의 공간을 특별히 신경 써서 꾸몄습니다.
침실은 물론 놀이공간, 공부방까지 딸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최대한 반영해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도 학창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마음껏 자랑하고, 웃고, 식사하며 진짜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집을 짓는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중정의 유리창을 청소하는 일은 번거롭고, 내부 공간이 줄어든 만큼 수납이나 동선에서 고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명일 씨는 말합니다. “예쁜 걸 가지려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죠.”
기꺼이 감수하며 누리는 지금의 삶은, 어릴 적 품었던 소망 그 이상이라고.
하품가는 단지 예쁜 집이 아닙니다.
한 남자의 유년의 상처를 품어 안고, 묵묵히 치유해 준 공간입니다.
벽돌 하나, 나무 한 그루, 유리창 너머의 하늘빛까지도 삶의 깊이를 말해주는 이 집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진짜 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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