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내게 준 두 번째 인생, 나는 이 길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가슴이 탁 트이는 영덕의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이 속삭이고 파도가 이야기하는 풍경 속에 어느새 빠져든다.
그 속엔 파도보다 깊고, 바위보다 단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경북 영덕에서 35년째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해녀, 배춘자 씨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을 기다리지만, 춘자 씨는 바다 속 미역밭이 무럭무럭 자라는 계절을 기다린다.
그녀에게 봄은 곧 바다 농사의 계절이다.
그녀가 바다에 처음 들어간 건 서른네 살, 한창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을 시기였다.
해녀로서는 늦은 나이였지만, 그녀는 주저할 틈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함께 하던 양식장 사업이 무너진 것도 모자라,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날부터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집안 살림이며 네 딸의 교육, 병든 남편의 병구완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순 없었다. 그때 그녀가 선택한 건, 그동안 곁에서 지켜만 보았던 바다로 직접 들어가는 일이었다.
찬 바닷물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고, 해녀의 일은 말 그대로 ‘고된 노동’ 그 자체였다.
아무리 봄이라도 수온은 10도 남짓,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모든 근육을 쓰는 일이고, 숨 한 번 잘못 참으면 생명과 맞바꿔야 하는 위험도 늘 존재했다.
그러나 춘자 씨는 달랐다. 절박함은 그녀를 단련시켰고, 책임감은 그녀를 바닷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물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돌미역을 베고, 이끼와 이물질을 손수 다듬어 햇볕에 말리는 과정까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지만, 그 속에서 그녀는 다시 살아나는 법을 배웠다.
바닷속 돌에 붙은 미역은 마치 작은 은행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잘 자란 미역은 건조 후 시장에서 ‘자연산 돌미역’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춘자 씨는 늘 바다를 ‘자식들을 먹여 살린 은인’이라고 말한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도 그녀를 붙잡아준 건, 바로 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삶이 무너졌을 때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아이들의 학비를 감당하게 해준 것도, 병든 남편의 약값을 마련해준 것도 결국 이 바다였다.
그녀는 말한다. “이젠 바다가 엄마 같아요.” 바다가 자신을 낳았고, 키워줬고, 살게 해줬다는 고백.
그렇게 35년의 세월이 흘렀고, 네 딸은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며, 그녀는 여전히 매년 봄이면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거둬 올린다.
물속의 암반 틈에서 자라나는 미역처럼, 그녀의 삶도 그리 피어났다.
고되고 거칠지만, 단단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배춘자 씨가 보여주는 해녀의 삶은 단순한 직업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생존기’이자, ‘바다와 함께 써 내려간 자립의 기록’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해녀’라는 단어의 이미지 너머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과 묵묵한 사랑이 숨어 있다.
춘자 씨는 그 사랑을 미역 한 장, 한 장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덕의 바다는 오늘도 잔잔히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그녀를 품는다.
바닷속 미역들은 춘자 씨의 손을 기다리고, 그녀는 또 오늘도 바다로 향한다.
물이 차가워도, 몸이 무거워도, 마음만은 언제나 바다를 향해 있다.
“처음엔 내가 바다를 찾았지만, 이제는 바다가 나를 불러요.” 그 말 한마디에 35년 세월이 담겨 있다.
KBS1 <동네 한 바퀴> 321회 ‘바닷길이 부른다 – 경상북도 영덕군’ 편에서는 바로 이 배춘자 해녀의 인생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덕이라는 지역이 품은 따뜻한 사람들의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감동을 전한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진짜 ‘동네’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5월 24일(토) 저녁 7시 10분,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수평선 너머로 묵묵히 살아가는 이웃의 삶을 만나보자. 그 바닷길의 끝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 소중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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