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의 작은 마을.
스무 가구도 채 되지 않는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집 한 채가 눈앞에 펼쳐진다.
집 뒤편에는 키 큰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앞마당 너머로는 금강이 너른 품을 드러낸다.
이 고요하고도 장엄한 배경 안에 자리한 90년 된 고택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오랜 꿈과 치열했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집이다.
삶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집, 그 집을 짓기까지의 이야기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궁궐 앞을 지키던 해태상이 떡하니 서 있고, 그 위엔 솟을대문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시골 한옥에 이 정도 위용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연일까?’
건축주인 남편의 어린 시절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그는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솟을대문을 처음 봤다고 한다.
그 대문을 바라보며 어린 마음에 결심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집을 지어야지.’
그게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력이 되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줄여가며 일했고, 결국 경제적으로는 충분한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아토피와 스테로이드 중독으로 이어졌고, 그 고통은 결코 돈으로 치유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없이 떠난 해외여행도 잠깐의 위안일 뿐.
돌아오면 다시 같은 현실이 반복됐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고 한다.
‘정말 필요한 건 비행기 표가 아니라, 쉴 수 있는 집 한 채였구나.’
그렇게 그의 집 짓기 여정은 시작됐다.
5년에 걸쳐 적당한 집터를 찾고, 직접 전국을 돌며 나무를 골랐다.
나무를 고르기만 한 게 아니다. 목수 학교에 등록해 손수 기술을 배웠고, 돌담 쌓는 법도 익혔다.
결국 전통 건축의 장인인 대목장과 손을 잡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 3년 동안 정성을 들였다.
이 집에는 건축주의 오랜 소망뿐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실용적 고민도 녹아 있다.
기존 한옥의 단점 중 하나가 좁은 거실인데, 그는 다섯 칸짜리 본채 중 세 칸을 터서 개방감 있는 넓은 거실을 만들어냈다.
탁 트인 그 공간은 창 너머로 금강이 흐르고, 사방에서 자연이 스며든다.
한옥은 단열이 약하다는 인식도 깼다.
건물 외곽을 따라 ㄷ자형으로 설치한 방풍실은 외풍을 막아줄 뿐 아니라, 각 면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 계절별로 커다란 창이 액자처럼 작용한다.
어느 날은 눈 오는 뒷마당, 또 어느 날은 안개 낀 강변이 배경이 된다.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아내를 위한 배려다.
벌레를 싫어하는 아내를 위해 집을 약 1미터가량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하자 주방과 실내 공간의 층고가 높아지면서 한옥에선 보기 드문 개방감을 갖게 되었고, 통풍도 잘 되고 곰팡이도 없다.
실제로 집에 들어서면 마음부터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그는 말한다. “더 이상 해외로 도망치지 않아도 돼요.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이니까요.”
집은 단순한 쉼터를 넘어, 그의 삶을 되돌려놓은 공간이었다.
스트레스와 병으로 지쳐갈 때, 다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준 곳.
사업의 성공은 경제적 풍요를 줬지만, 이 집은 삶의 이유와 방향을 되찾게 해 줬다.
집을 짓는 일은 결국 자신을 새로 짓는 일과도 같다.
무심코 스쳐 지날 수도 있는 이 한옥 안에는, 지독히 치열했고, 끝내 따뜻해지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인생이 담겨 있다.
금강이 흐르고, 대나무가 자라는 마을 한복판에서 그는 지금, 오롯이 자신의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집 안의 해태상은 묵묵히, 그 삶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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