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농작물은 수천 년간 우리의 환경과 기후에 맞춰 자라온 귀한 생명체이자, 전통과 함께 대물림해 온 우리 고유의 문화입니다. 요즘에는 대량 생산된 농산물이 주를 이루고, 그 안에서 전통을 지켜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변화와 환경의 변동 속에서도 꿋꿋하게 토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고된 손길로 씨앗을 거두고, 오랜 시간 우리 땅에서 뿌리를 내린 농작물로 밥상을 차립니다. 오늘은 순창과 임실의 깊은 산속, 탑리 마을의 이득자 씨(54세)가 차려내는 토종 밥상을 만나보겠습니다.
이득자 씨는 30년 가까이 외진 탑리 마을에서 토종 농사를 지어온 여성 농부입니다. 어릴 적 몸이 약해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던 그녀는 결혼 후 외딴 산간마을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토종 작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의 고유한 농작물을 먹고 기르면서 점차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고, 그녀의 두 아이 역시 토종 농작물을 먹고 자라며 무탈하게 성장했습니다. 몸소 경험한 토종 농산물의 가치와 그 생명력은 그녀에게 더없이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득자 씨는 지금도 산골 생활을 고집하며 건강하고 강인한 토종 작물들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6000평 넓이의 밭은 마치 살아 있는 ‘토종의 방주’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순전히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키우는 작물이 다양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보기 드문 목화나 박, 수세미 같은 작물들이 한데 모여 자라며 생명력을 뽐냅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토종 씨앗들이 이곳에서 득자 씨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굽이굽이 자라난 소나무가 오래된 선산을 지키듯이, 산골의 아낙네인 득자 씨는 이렇게 귀하고 사라져 가는 토종 씨앗들을 가꾸고 있습니다.
득자 씨가 손수 차려내는 토종 밥상에는 이 땅을 살아온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음식 중 하나인 들깨토란탕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마을의 이웃 할머니가 전해준 토종 들깨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토종 토란으로 만든 것으로,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전통 음식으로 꼽힙니다. 이곳 사람들은 한때 명절이 되면 이 들깨토란탕을 특별한 음식으로 차려 먹었으며, 토종 들깨와 토란을 집집마다 소중히 보관하며 대를 이어 전해왔습니다. 왕겨 속에 씨앗을 덮어 두고 신줏단지처럼 다루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그들의 소중한 손길과 애정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득자 씨가 간직하고 있는 토종 씨앗은 무려 200여 종에 달합니다. 이렇게 모아 온 토종 씨앗들은 그녀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 더욱 깊은 가치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 또한 이같이 건강한 토종 음식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으며, 득자 씨의 노고를 칭찬하기도 합니다. 올해로 94세가 된 시어머니는 득자 씨가 차려내는 토종 밥상을 유난히 즐기며 그 맛과 건강함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은 힘든 유기농 토종 농사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중장비 기사로 일하며 번 돈을 밭을 사는 데 사용하고, 힘든 농사에도 묵묵히 아내를 지지해 왔습니다.
남편을 위해 득자 씨가 준비하는 특별한 보양식이 있습니다. 그녀가 직접 부화시켜 키운 토종 오골계에 서리태, 강낭콩 등 여러 종류의 토종 콩을 넣어 만든 토종오골계백숙은 건강을 챙기고자 하는 사랑의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입니다.
또한 시어머니를 위한 토종 물고구마와 신선한 토종 과일들 역시 그녀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성의 상징이지요. 토종 과일은 모양도 색깔도 각양각색이라 식후 입가심으로 즐기기에 제격입니다.
이렇듯 탑리 마을에서 살아가는 득자 씨의 토종 밥상에는 자연과 전통,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녀가 하루하루 정성껏 가꾸어 나가는 토종 밭과 그 안에 숨 쉬는 씨앗들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산골에서 자라난 아낙이 차려내는 이 토종의 향연은 단순한 맛의 경험을 넘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가 되어줍니다.
토종 천마를 지키는 사람들 - 한국인의 밥상, 덕유산 토종 천마
토종 천마를 지키는 사람들 - 한국인의 밥상, 대를 이어온 토종, 세월의 맛을 품다, 덕유산 토종
우리의 토종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환경과 삶의 방식에 맞추어 지켜져 온 귀중한 유산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문화의 흔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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