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
현대적인 건축미를 뽐내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이 동네에서, 유독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집이 있다.
높지 않은 담장, 과하지 않은 외관, 그리고 정겨운 느낌의 붉은 벽돌. 겉보기엔 마치 평범한 단독주택 같지만, 그 안엔 세월의 온기와 예술가의 감각이 어우러진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집의 주인은 그림을 전공한 예술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여성.
그리고 이 집은 다름 아닌 그녀의 외할아버지 집이다.
언젠가 꼭 내 집을 직접 꾸며보고 싶다는 소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전세 아파트 생활에선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이자 기억의 거점이 되어주었던 이 집이 그녀 앞에 남겨졌다.
“팔아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수 없었어요. 외할아버지의 숨결이 아직도 벽에 남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녀는 집을 팔지 않고, 직접 고쳐 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집의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높은 계단, 좁고 어두운 복도, 비효율적인 동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젓고 돌아섰을 구조였지만, 그녀에겐 달리 보였다. 대학 시절 유럽에서 유학하며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접했고, 특히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와 런던의 복층 플랫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던 그녀에게 이 집의 구조는 오히려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유학 시절, 유럽의 집을 촬영하고 분석하는 건축 어시스턴트 일을 하며 배운 실전 감각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그녀는 기존의 평면을 크게 바꾸지 않되, 공간의 흐름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거실과 부엌 사이 벽은 허물지 않고 그 위에 선반을 달아 시각적 통일감을 주었고, 높은 계단은 그 자체로 집의 중심이 되도록 조명과 아트워크로 장식했다.
좁은 평수를 넓게 쓰기 위한 그녀의 전략은 ‘선의 흐림’과 ‘면의 활용’에 있다.
각 공간을 명확히 나누는 대신 색감과 소재로 분위기를 달리하고, 벽면 곳곳에 수납장을 매립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잡았다.
특히 타일 선택엔 그녀의 예술가적 감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직접 디자인한 타일은 주방 벽, 욕실, 현관 바닥에 각각 다른 무늬로 시공되어 단조로움을 피하면서도 집 전체의 흐름을 유지시킨다.
남편의 서재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한 공간쯤은 남편만의 취향을 오롯이 드러내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집 안 대부분은 그녀의 손길로 채워졌지만, 그 안엔 가족 모두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무엇보다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시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외할아버지가 머물던 방은 지금 그녀의 작업실로 바뀌었고, 창가에 놓인 흔들의자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벽 한 편에는 외할아버지가 직접 쓰던 손때 묻은 책장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이 자라온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들은 왜 낡은 걸 고쳐 쓰냐고 묻지만, 저는 이렇게 말해요.
새것은 편리할지 몰라도, 오래된 것엔 사람의 온도와 시간이 스며 있다고요.”
이 집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한 ‘현재진행형 공간’이다.
창밖에 심은 나무는 새로 심었지만, 꽃이 피는 계절은 외할아버지 때와 똑같다.
그렇게 그녀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준비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예쁜 집’이 아니라, 집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집이란 ‘누가 지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진짜 가치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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